조선시대 객사의 주요 기능 2가지와 공간구성의 특징
조선왕조의 건국과 더불어 지방관이 파견되는 군현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남에 따라 객사의 신축이 활발히 늘어났다. 객사의 기능을 보면 빈객의 접대와 정치를 베푸는 시설로서의 사용되었고, 이 외에도 유교적 의례를 행하기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방관 혹은 사신이 국왕에 대해 예를 올려야 할 때, 즉 국왕이 임명하여 보낸 관찰사를 맞이하거나, 국왕의 명령서인 논서를 받아들이는 의례 등 국왕에 대한 모든 의례가 객사의 정청에서 행하여 졌다.
읍치에 군현을 다스리는 지방관의 거처인 공아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아가 아닌 또 다른 권위적인 공간인 객사를 의도적으로 구성하고 있는 것은 지방통치가 지방관이 아닌 국왕에 의해 직접 이루어지고 있음을 건축적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음이 보여진다. 공아는 지방통치의 실무를 행하였던 시설이었던데 반해, 객사는 보다 상위의 개념, 즉 실제 국왕이 거처하는 중앙의 궁궐을 의미하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객사는 지방군현의 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해 오는 관찰사의 집무처로도 사용되었다.
이처럼 객사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조정을 상징하는 시설임과 동시에 관찰사에 의해 직접 지방관을 감찰하고 정사를 행하는 관청이었다.
객사의 공간구성을 보면 상징적으로 왕이 머무는 중앙의 정청을 중심으로 양측에 양익헌(동익현, 서익현)이 설치되어있다. 이런 객사의 독특한 건축형태는 국왕을 중심으로 동서로 문·무관이 늘어선 조정의 모습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참고문헌 및 사이트
1. 김헌규(2007), 조선시대의 지방도시 읍치의 성립과 계획원리에 관한 연구, 건축역사연구 제16권 2호 통권51호
2. 이재희·안정근(2013), 조선시대 읍성의 도시공간구조 특성연구, 한국지역개발학회지 25(1)
3. 김환희(2020), 한반도 고대 도시 외곽의 등장과 전개, 한국전통문화연구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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