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재미있는 역사이야기

10월 19일 화문관 향토문화연구회(향문연) 공부

seoyeoul 2015. 10. 27. 11:09

● 조(祖)와 종(宗)에 대하여


  조(祖)와 종(宗) 같은 명칭을 일컬어 ‘묘호’라고 한다.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종묘에 신위를 모실 때 쓰기 위한 것이다. 이 묘호의 뒤에는 조(祖)와 종(宗)이 붙인다. 정확하게 말해 왕이 죽고 난 후에 붙인 명칭이라는 것이다.

  보통 조(祖)는 ‘공’이 탁월한 왕에게 붙이게 된다. 즉, 나라를 세웠거나 변란에서 백성을 구한 커다란 업적이 있는 왕에게 조를 붙였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가 그랬고, 임진왜란의 대 환란을 극복한 ‘선조’가 그랬다. 또한 대왕이라고 추앙을 받는 ‘영조’가 그랬다.


  그리고 앞선 왕의 치적을 이어 ‘덕’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문물을 융성하게 한 왕은 종(宗)으로 부른다.

이러한 묘호는 신료들이 왕의 일생을 평가해서 정했다고 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이미 정한 묘호를 바꾸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선조의 경우, 처음 묘호가 선종이었으나, 국난(임진왜란) 극복 등 커다란 공이 있다고 일부 신하들이 주장하여 선조로 바꿨다고 한다.


  이와는 다르게 ‘군(君)’이라는 칭호도 보여 진다 군(君)이라는 것은 원래 왕자들이나 왕의 형제, 또는 종친부나 공신에게 주어지는 호칭이었다. 그러나 광해군과 연산군의 경우 재위 기간 중 국가와 민생에 커다란 해를 끼친 폭군으로 폐위되었기 때문에 왕으로 대접하지 않고 군으로 봉해진 것이다.


  따라서 역대 왕과 왕비, 추존왕(실제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지만, 죽은 뒤에 묘호가 내려진 왕)과 왕비의 신위가 봉안되어 있는 왕실 사당인 종묘에서도 광해군과 연산군의 신위는 찾아볼 수 없다.


  훈민정음을 창제하신 세종은 현재에는 ‘세종대왕’으로 추앙을 받고 있지만, 당대에는 ‘조’의 반열까지 오르기는 미흡한 왕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광해군은 중립외교로써 외교적 역량을 발휘했지만 반정세력의 정당성 확보를 위해 ‘군’으로 낮춰 기록된 것이다.


◎ 조(祖)

태조, 세조, 선조, 인조, 영조, 정조, 순조 등 7명

창업군주, 중흥군주나 큰 국난을 극복하였거나, 반정을 통해 즉위한 왕


◎ 종(宗)

27명의 왕 중 9명을 뺀 나머지 왕들로 ‘수성’을 한 왕에게 붙임. 조와 종의 기준은 애매모호하며 당시의 정치적 형편에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것임.

(수성이란 선왕이나 부조과 업을 이어서 지킴이라는 뜻)


◎ 군(君)

연산군, 광해군

반정으로 축출됨으로써 서출 왕자에게 쓰는 군으로 강등됨. 실록도 연산군 일기, 광해군 일기로 차별을 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