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실의 무덤 형태, 능(陵)· 원(園)· 묘(墓)
전통시대 ‘예’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등급을 구분 짓는 것이었다. 조선은 건국 초 국가 예제를 정비하면서 천자국 중국보다 한 등급 낮추는 방향으로 진행하였는데 왕실의 무덤을 조성할 때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되었다.
조선의 국왕과 왕후는 승하하면 곧바로 ‘왕릉’을 조성하고 그들의 시신을 안장하였다. 원래 왕릉은 천자국 황제의 무덤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태조의 계비인 신덕왕후의 무덤을 ‘정릉’이라 하여 능호를 사용하였으며 이후 모든 국왕과 왕후의 무덤을 ‘능’이라 일컬었다.
‘원’은 원래 천자나 제후왕에게 쓸 수 있는 무덤이다. ‘원’은 조선 전기에는 없는 양식의 무덤이었으나 조선 후기 인조대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인조는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즉위한 국왕으로, 인조처럼 적장자가 아니면서 국왕으로 즉위한 경우 그 국왕의 사친(私親)을 위해 조성한 무덤은 ‘묘’가 된다. 그런데 인조는 자신을 낳아준 사친의 무덤을 묘에서 원으로 승격시켰다.
인조는 반정으로 즉위한 뒤 생부인 정원대원군의 묘를 ‘흥경원’, 생모인 연주부부인의 묘를 ‘육경원’이라 일컫도록 명령하였다.
이후 ‘원’은 영조대에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영조는 생모 숙빈 최씨의 묘를 ‘원’으로 승격시키고 원호를 ‘소령원’이라 했다. 이후에는 소령원을 전범으로 한 ‘원’들이 속속 나왔고, 소위 칠궁(조선후기 왕실의 후궁 가운데 아들이 국왕 혹은 추존 국왕이 되어 그들의 생모를 봉안한 사당)에 봉안된 분들의 무덤이 ‘원’의 형태로 조성되었다.
그 밖에 왕세자에게 ‘원’이라는 무덤을 적용한 경우가 바로 장헌세자의 ‘영우원’이었다. 물론 그가 훙서한 당시에는 ‘묘’라고 일컬었다가 아들인 정조가 영조의 뒤를 이어 즉위하면서 ‘원’으로 승격시킨 것이다. 왕세자에게 원제를 적용한 것은 장헌세자가 유일하였고, 그 이후에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그 다음 무덤의 형태는 ‘묘’이다. 능과 원이 아닌 무덤이 묘였다. 후손이 없는 세자와 세자빈, 폐비, 후궁, 대원군, 사대부 등 대부분의 무덤이 묘였다.
칠궁
*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의 육상궁
* 선조의 후궁 인빈 김씨의 저경궁
* 숙종의 후궁 희빈 장씨의 대빈궁
* 영조의 후궁 정빈 이씨의 연호궁
* 영조의 후궁 영빈 이씨의 선희궁
* 정조의 후궁 수빈 박씨의 경우궁
* 고종의 후궁 순빈 엄씨의 덕안궁
<왕의 행차(화성시 발행)에서 정리한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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