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화성의 김치)
김치는 한자어 침채(沈菜)에서 나왔다고 한다.
침채라는 뜻은 ‘채소를 절인다’는 뜻이므로 김치는 채소절임 음식을 총칭할 수 있다.
우리나라 문헌에 나오는 채소 염장발효식품의 한자표기는 혜(醯), 저(葅, 菹), 지(漬), 지염(漬鹽), 침채(沈菜) 등이다
저(葅)는 저(菹)와 같이 쓰며 <훈몽자회>에서는 ‘딤채조’라고 하고 <임원십육지>에서는 ‘날채소를 소금에 절여 차가운 곳에 두어 익힌 것, 즉 저(葅)란 한 번 익혀먹는 침채류이다’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저(葅)가 채소의 염장 발효 식품이고, 혜(醯)도 같은 뜻으로 쓸 수 있는 한자표기임을 알 수 있다.
혜(醯)는 683년 신라의 신문왕이 비를 맞이할 때의 폐백품목의 하나로 나오고, 저(葅)로 표기된 것은 <세종실록> 오례 <사직정배찬실도설>에서 처음이며 침채(沈菜)란 표기는 <수운잡방>에서 처음 나온다. 지염(漬鹽)은 <동국이상국집>에서 처음 나오고, 그 후 지(漬)라고 하였다.
혜(醯), 저(菹), 침채(沈菜)가 김치류의 낱말이기는 하지만 담금법의 기본이 동일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漬)’는 ‘디히, 저(菹)’가 그 원어이며 이것이 김치를 뜻하는 우리 고유의 옛말이라고 한다. 한편 ‘저(菹)’와 저(葅)는 같은 자로서 <훈몽자회>에서 ‘딤채조’라 한다. 딤채란 말은 팀채(沈菜)라고도 했다.
‘지’와 ‘팀채’는 모두 김치의 지칭이되 지금 지로 불리는 김치는 국물을 붓지 않은 것임을 생각할 때 ‘지’는 고대로부터의 김치이고, 침채는 채소발달 이후의 분화 개발된 김치라고 생각할 수 있다.
즉, 김치는 혜(醯), 저(菹), 지염(漬鹽),지(漬), 침채(沈菜), 딤채, 짐채, 김채의 과정을 거쳐 현재에 김치로 불리우고 있다.
우리나라 삼국 및 통일신라시대 이전의 문헌에 김치를 가리키는 저(菹)에 대한 기록은 보이지 않지만 <삼국사기>나 <삼국지 위지 동지전>등에 채소의 기록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리나라에 저(菹)가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저(菹)라는 글자의 첫 등장은 <고려사>이고, 고려 중엽의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의 시문<가포육영>에서 여섯 가지 채소에 대하여 읊고 있는데 이 속에 저채류(菹菜類)가 내포되어 있다
<고려도경>에 혜(醯)가 귀천없이 일상찬물로 쓰이고 있다고 한 것 등으로 보면 이 당시 저채류(菹菜類)가 상용되고 있었음이 짐작된다.
채소재배의 발달에 따라 동치미, 나박김치 등이 개발되었는데, <동국이상국집>에 보면 오이, 가지, 무, 파를 재배하여 찬물로 쓰고 있음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무는 짠지류 또는 동치미 같은 채소절임을 하였음을 짐작케 한다. <구급벽온>에서 순무의 저즙(葅汁)을 많이 먹으라는 얘기도 나오며, <간이벽온방>에 ‘순무나박김치국의 국물을 어른 아이 모두 대소간에 마시라’고 하였으니 나박김치가 있었음이 확인된다.
처음에는 장아찌 형태의 것에 머물던 것이 점차 장아찌 형태의 것과 동치미, 나박김치로 분화 발달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서는 여러 문헌에서 김치에 대한 글을 발견할 수 있다. <태종실록>에는 침장고(沈藏庫)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로서 김치 담기를 김장이라 하는 유래도 알 수 있다. <음식디미방>에는 동아 담는 법, 마늘 담는 법, 산갓침채, 생치팀채, 생치짠지, 생치지, 나박김치 등 7가지 김치에 대하여 나온다. <산림경제>에 저채류 8가지 제법을 소개하였고, 다시 50년 후 이것을 증보한 <증보산림경제>에는 저채류 만들기 34가지를 소개하였다.
유득공(1749년~?)이 서울의 풍속과 연중행사를 적은 <경도잡지>에 보면 무, 배추, 마늘, 고추, 소라, 전복, 조기를 젓국에 버무려 김치를 담근 섞박지를 당시의 서울사람들이 먹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49년 <동국세기기>에는 김치담기를 ‘침저’라 하였고, 무김치, 배추김치, 동치미, 섞박지, 장아찌김치 등이 겨울철에 많이 쓰이고 있음이 기록되어 있다.
고추의 유입 시기는 대체로 조선 중기 임진왜란을 한 계기로 보고 있다. 고추가 도입되기 전의 김치는 소금물에 담그거나 천초, 회향 등 향신료를 이용하여 담갔다. 1670년경의 <음식디미방>에는 동아를 절여서 담그는 소금절이 김치나 산갓을 작은 단지에 넣고 따뜻한 물을 붓고 뜨거운 구들에 놓아 익히는 김치가 보인다. 이것은 ‘무염침재’처럼 채소 자체를 소금없이 숙성시키는 것이다. 또 ‘생치침채법’이 설명되어 있는데, 이것은 간이 든 오이김치를 껍질을 벗겨 가늘게 썰어 물에 우려두고, 꿩을 삶아 오이지와 같이 썰어 따뜻한 물에 소금을 알맞게 넣어 나박김치와 같이 담가 삭혀서 먹는 것이다.
1600년대 말엽의 것이라 추정되는 <요록>이라는 문헌에는 11종류의 김치류가 기록되어 있는데, 고추를 재료로 쓰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고, 무, 배추, 동아, 고사리, 청태 콩 등의 김치와 무를 소금물에 담근 동치미가 설명되어 있다. 당시에 고추가 전래되었으나 아직 김치에 이용되지는 못하였던 것 같다.
1715년경의 <산림경제>의 김치류에도 고추는 보이지 않고 소금에 절이고 식초에 담그거나 향신료와 섞어서 만들고 있다. 그러다가 1766년에 나온 <증보산림경제>에서는 김치에 고추를 도입한 것이 보이고 있다. ‘침나복함저법’을 보면 잎줄기가 달린 무에 청각채, 호박, 가지 등의 채소와 고추, 천초, 겨자 등의 향신료를 섞고 마늘즙을 듬뿍 넣어서 담그고 있다. 이것은 오늘날 총각김치와 같은 것이다. 또 ‘황과담저법’은 오이의 3면에 칼자리를 넣고 속에 고춧가루, 마늘을 넣어서 삭이고 있는데, 이것은 오늘날의 오이소박이이다. 그밖에 동치미, 배추김치, 용인오이지, 겨울가지김치, 전복김치, 굴김치 등 오늘날의 김치가 거의 등장하고 있다.
1872년 <임원십육지>에 소개된 김치류에는 젓국지가 등장한다. <규합총서 閨閤叢書>에도 김치류의 제법을 여러 가지로 설명하고 있으나 <증보산림경제>나 <임원십육지>의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빙허각 이씨가 1915년에 편간한 <부인필지>를 보면 개화시대 및 일제 강점기 시대의 김치에 대하여 알 수 있는데, 이 시기에는 이미 무, 배추가 김치의 주재료로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고춧가루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고 젓갈과 젓국의 사용이 일반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고, 부재료 중 향신료 외에도 잣, 생굴, 청각, 석이 등도 권장되고 있으며, 통배추 김치가 등장함을 볼 수 있다.
그 후 출간되는 <조선요리제법>,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조선요리법>, <가정요리>등의 책에도 여러 가지 김치에 대하여 소개되고 있다.
일제 강점기때 발행된 동아일보 신문기사를 보면 김치에 대한 기사가 많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맛있는 김치 담그는 법’, ‘소금시세’, ‘김장시세’, ‘수원채소가 폭등했다’ 등의 기사를 볼 수 있으며, 조선일보에도 ‘조선사람 밥상위에 한 끼도 빠지지 못하는 것’, ‘김장은 제철에 하지 못하면 한 겨울동안을 고생’, ‘아무리 어려워도 김장은 해야 하는 것’등으로 김치가 정의되어 있다.
근대 및 현대의 김치 변화의 주된 요인은 김치 재료의 품종개량과 젓갈 및 조리법의 일반화라고 할 수 있다. 지금처럼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우리 식탁에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배추가 김치의 재료로 사용되기 시작한 이래 계속하여 배추의 품종 개량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겠으나 1960년대까지도 서울배추, 개성배추라고 하는 반결구형의 배추를 사용하여 김치를 담그는 집이 많았었다.
김치 재료의 하나인 젓갈도 전에는 각 지역에서 잡히는 생선을 이용하여 각 가정에서 젓갈을 많이 담가서 김치에 넣었으나 요즈음 대도시에서는 집에서 젓갈을 담그는 일이 매우 드물게 되었고 공장에서 김치용 액젓이 생산되어 많은 가정에서 이용하고 있다.
김치 조리법의 변화에 큰 영향을 주게 된 것은 6·25전쟁과 도로시설과 교통수단의 발달과 매스컴의 영향을 꼽을 수 있다. 1950년 이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이 지역 사이를 왕래하는 일이 빈번하지 않아 각 지방의 고유한 김치가 비교적 잘 보존되고 있었다.
그러나 전쟁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지역을 이동하게 되었으며 그 지방에서 장기간 머물게 되면서 서로 다른 지방의 김치를 먹어보고, 김치 담그는 법을 배우게 되어 다양한 조리법을 접할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와 함께 우리의 지리적 여건이 각 지방을 분리시키는 산간구릉이 많으므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되고 전수되어 오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지형으로 북쪽의 강추위는 김치에 있어서도 고추가루를 적게 쓰고 싱겁게 만드는 경향으로 바뀌게 하였고, 전라도 지방은 맵게, 경상도 지방은 짜게 만드는 방법으로 특징을 이루어왔다.
젓갈을 사용할 때도 중부에서는 새우젓을, 남부에서는 멸치젓을 주로 넣었다.
담근 김치를 잘 보관하는 것도 김치를 맛있게 먹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 중요한 점은 온도를 맞추는 일인데 겨울에는 얼지 않게 보관해야 하고 여름에는 쉽게 시지 않게 하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움집을 만들고 땅에 묻으며, 해를 넘겨서 먹을 것은 위에 흙을 덮거나 하여 갈무리에 유념하였다.
지역에 따라 부재료인 양념에 약간 차이가 있지만 어느 지방에서나 담그고 있는 김치는 배추통김치, 배추김치, 깍두기, 열무김치, 나박김치이다. 매스컴과 교통의 발달로 점차 지역의 특색은 옅어져 가고 있지만 아직도 김치는 만드는 방법이나 익히는 방법이 다양하고 비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 지방색이 매우 강하다.
개성지방의 보쌈김치나 생선을 섞어서 사용하는 황해도의 채칼김치, 생태를 많이 넣는 강원도의 김장김치는 매우 특이하여 그 지방의 특산물을 충분히 이용한 김치로 승화시킨, 영양적으로도 우수한 음식으로 발전되어 왔다.
김치의 종류는 주재료인 채소가 생산되는 계절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대단히 많은데 모든 채소류 뿐 아니라 파래등 해조류를 주재료로 쓴 것이 있는가 하면 고구마, 토란 등 서류도 이용하였고 두부, 콩도 사용하기도 한다.
주재료뿐만 아니라 부재료의 사용에서 보면 경상도지방은 따뜻한 날씨 때문에 일찍 시어지는 것을 막으려고 소금에 푹 절이는 한편 양념재료에 무를 쓰지 않고 고춧가루와 마늘을 많이 쓰는 것이 다르다. 젓국으로는 멸치젓을 달여서 삼베로 걸러 국물만 쓰고, 갈치속젓을 넣어 맛을 내기도 한다.
전라도 김치는 멸치젓국을 많이 써 색깔은 탁하지만 깊은 맛이 있으며 채소를 다양하게 골고루 사용한다. 충청도 김치의 특징은 조기젓이나 새우젓을 사용한다는 점이며 표고버섯을 채 썰고 배, 밤 등의 재료를 넣어 은근한 맛이 우러나온다. 가자미식혜로 잘 알려진 함경도의 김치는 남쪽지방과 매우 다르다. 젓갈류를 사용하지 않고 마늘, 파, 생강으로 맛을 내며 동태, 굴을 양념에 사용하면서 양념 속을 적게 넣는데 추운 날씨로 쉽게 시지 않으므로 싱겁게 담궈서 오래 싱싱한 맛을 간직한다
지리적으로 중간에 위치한 경기도의 김치는 화려한 모양과 맛이 두드러지며 담백하고 깔끔한 맛을 내는 것이 특징이다.
그리고 서해의 풍부한 해산물과 산간지방의 산채와 곡식재배가 어우러져 김치의 맛과 종류 또한 매우 다양하다.
젓갈은 새우젓, 조기젓, 황석어젓 등 담백한 것을 많이 쓰고 생새우, 생태, 생갈치 등을 넣기도 하며, 멸치젓을 쓰기도 한다.
간은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하기 때문에 먹기 좋다.
보쌈김치, 동치미, 씨도리김치, 뀡김치, 순무김치, 고구마줄기김치, 용인오이지, 백김치, 장김치, 총각김치, 미나리김치, 오이소박이, 오이물김치 등이 경기도의 대표적인 김치이다.
2002년 화성시의 민속 식생활 조사에 의하면 농촌지역에서 주로 먹는 김치로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 부추김치, 파김치 등을 주로 먹고 있었으며, 나박김치는 명절에, 동치미는 겨울에, 여름에는 오이지를 담궈 먹고 있었다. 깻잎김치는 담그지 않으며, 보쌈김치는 가을에 해 먹는 가정도 있었지만 거의 담궈 먹지 않고 있었다.
어촌지역의 김치로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 부추김치, 파김치 등을 주로 먹으며, 나박김치는 명절에, 동치미는 겨울에, 여름에는 오이지를 담구어 먹고 있었다. 깻잎김치는 담그지 않으며, 보쌈김치와 백김치는 거의 담궈 먹지 않고 있었다.
도시지역의 김치로는 배추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오이소박이, 부추김치, 파김치 등과 겨울에는 동치미를 담궈 먹고 있었으며, 나박김치는 제사가 아니더라도 물김치의 형태로 평소에도 먹고 있었다. 깻잎김치와 보쌈김치는 담그지 않으며, 백김치는 가끔씩 먹고 있었다.
화성 서북부 해안지역(송산, 서신, 마도)의 김장에 대하여 살펴보면 김장은 대략 11월 20일 경에 하며 음력으로는 동짓달, 10월 그믐께가 된다. 주요 김장김치류는 배추, 알타리, 순무, 싱건지(동치미), 짠지 등이 있고 특히 화성지역에만 생산된다고 하는 ‘간무’김치가 있었다. 이 ‘간무’는 예전의 토종 조선배추의 꼬리처럼 생겼고 강화도의 순무와 같은 형태로 순무는 붉은 기를 띠지만 간무는 하얀색을 가지고 있다. ‘간무’의 김치 맛 역시 쌉쌀한 맛을 내는 순무김치와 유사하였다. ‘간무’김치는 젓국을 많이 넣어 짜게 하여 봄에 먹도록 만든다고 한다. 많이 익은 ‘간무’김치는 쌀뜨물을 받아 넣고 삼삼하게 지져 먹기도 한다. 지역 내에서는 김장시 빠지지 않는 품목이지만, ‘노리다’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김치의 젓갈은 요즘은 액젓, 새우젓이 대부분이지만 예전에는 조기젓, 밴댕이젓 등을 생으로 넣었다.
- 참고도서 -
1. 한국의 김치문화와 식생활, 최홍식, 도서출판 효일
2. 한국의 김치문화, 이효지, 신광출판사
3. 김치의 인문학적 이해, 임재해외, 세계김치연구소
4. 김치에 대한 인지, 정서 그리고 변화, 박채린외, 세계김치연구소
5. 일제강점기 김치기록 모음집(동아일보 신문기가 1920년~1945년), 세계김치연구소
6. 화성의 민속, 화성시
7. 화성시사Ⅱ, 화성시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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