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아주 오래전에 <아가씨와 건달들>이라는 뮤지컬을 본 적이 있다. 로맨틱하면서도 감상적인 음악과 노래, 무용 그리고 간간히 웃기는 코믹한 연기와 재치있는 대사는 나를 뮤지컬의 세계로 끌어 들이는데 충분했다.
무엇인가를 보고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특히 잘 만든 공연 예술품은 살아있다는 기쁨까지 느끼게 한다.
뮤지컬은 오늘을 사는 현대인들이 관람하기에 안성맞춤인 예술 장르이다. 그것은 연극의 드라마, 오페라나 콘서트의 음악, 무용이나 행위극의 율동(춤)이 적절히 녹아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뮤지컬은 무엇인가 보고 싶고, 듣고 싶고, 느끼고 싶어하는 욕구를 가진 사람들의 다양한 기호를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다.
아름다운 노래가 귓가를 맴도는가 하면 어느새 화려하고 경쾌한 춤이 눈을 현란하게 만든다. 여기에 희극적인 드라마는 관객을 웃음짓게 만들고, 비극적인 드라마는 눈물을 글썽이게 만든다.
그만큼 뮤지컬은 대중적이다. 남녀 노소를 불문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장르이다. 또한 현대 산업사회에 가장 잘 어울리는 예술장르가 바로 뮤지컬이기도 하다. 그것은 바쁜 일상에 쫓기고 스트레스로 가득찬 현대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는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뮤지컬이 공연 분야에서 특히 매력적인 문화상품으로 부각되면서 대자본과 결합한 형태를 띠기 시작하였고, 관객들의 취향 변화 역시 뮤지컬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현재 뮤지컬의 시장규모는 과거에 비해 크게 확대되었고, 공연문화 역시 그에 따라 성숙해지고 있으나 여전히 한계도 많다.
한국 뮤지컬 산업구조가 개선되어 더 좋은 환경에서 잘 만들어진 좋은 작품을 관람할 수 있기를 기대하면서 뮤지컬에 대한 얘기를 써 보겠다
2. 뮤지컬이란?
노래, 춤, 연기가 어우러지는 공연 양식을 Musical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미국에서 발달한 대중 예술로 음악 특히 노래가 중심이 되어 무용(춤)과 극적 요소(드라마)가 조화를 이룬 종합 공연물이다.
Musical은 언론, 극장, 애호가 등에 의해 쓰여지면서 Operetta에서 Musical Play에 이르는 음악적 작품을 가리키며, 레뷔, 보드빌 등 극의 성격을 갖지 않는 작품도 포함해서 Musical이라 부른다.
즉, Operetta의 방식을 도입한 대사극과 극적인 가창과 혼성으로 이루어지고, 극적인 의미를 지닌 춤을 첨가한 것이 Musical의 정의라 할 수 있다.
초기 뮤지컬은 코믹 오페라 같은 가벼운 악극인 오페레타 형식을 띠었다. 영국에서의 뮤지컬 코메디, 미국에서는 아메리칸 뮤지컬 등 조금씩 그 성향이 달리하는 이름들도 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 후반에 접어들어 유럽을 풍미한 오페레타와 그 계열의 음악극 형식을 수용하면서 20세기 이후에는 미국인의 기호에 맞추어 발달한 대중 음악극을 뮤지컬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영국의 발라드 오페라와 코믹 오페라, 비엔나식의 오페레타, 프랑스의 오페라 부파, 코메디, 발레, 팬터마임등 다양다색한 공연 예술의 형태들이 집합된 것이다. 이러한 요소를 선택하여 속도감 있는 전개와 로맨틱하고 아름다우며 듣기 쉬운 선율, 유머러스한 리듬감을 통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자리를 잡게 된 것이 바로 뮤지컬인 것이다. 연극 속에 음악과 춤이 적당히 혼합되어 부담없이 즐길 수 있는 초기의 형식에서 벗어나 하나의 완벽한 장르로 위상이 정립된 것이다.
이처럼 뮤지컬은 음악이 주는 감동이 절대적인 장르라고 할 수 있다. 현대 뮤지컬에는 드라마의 요소가 많이 첨가되고 있다. 초기에 비하면 여러모로 대단히 복잡한 표현 양식을 갖추게 되었다. 음악, 무용, 연기, 의상, 무대 장치, 조명, 분장 등 각 분야가 세부적 완성도를 기하면서 총체적인 조화를 이루어 낸다. 여기에서 오케스트라의 연주와 지휘는 감동의 공감대를 형성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뮤지컬은 주로 불행과 절망의 이야기보다는 행복감과 감동, 동경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를 선호한다. 그리고 뮤지컬의 주제는 복잡하고 추상적이고 사색적이기보다는 쉽고 재미있고 빠르게 진행되어야 한다.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이야기를 각색하는 것인데, 실제로 세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이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가 되었고, 몰나르의 <릴리옴>이 <회전목마>가 되었으며, 마트 트웨인의 <허클베리 핀>이 <빅 리버>로, 푸치니의 <나비부인>은 <미스사이공>이 되었다. 뮤지컬의 최고 히트작 <오페라의 유령> 역시 가스통 르루의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한다.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맨해튼을 가로지르는, 말 그대로 '큰길'이다. 패션과 상업의 중심지로서의 역할도 크지만 브로드웨이를 브로드웨이답게 만드는 것은 단연 극장과 뮤지컬들이다.
브로드웨이의 역사는 1900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42번가에 세워진 빅토리아 극장이 그 시초이다. 현재 타임스퀘어를 중심으로 흩어져있는 크고 작은 극장은 40여 개이고 오프브로드웨이 극장은 그 10배가 넘는다. 극장 천국인 셈이다. 이 극장들이 모두 매 시즌마다 막을 올리는 것은 아니지만, 항시 공연되고 있는 작품의 편수가 대략 200편 정도이니 숫자상으로만 보아도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브로드웨이 공연시장은 다수의 극장을 소유한 소수의 회사, 작품을 공급하는 프로덕션, 수많은 공연예술가들로 구성되며, 2014-2015년 기준으로 하여 연간 13억달러에 이르는 산업구조를 자랑한다.
뉴욕의 브로드웨이와 더불어 세계적인 뮤지컬의 명소인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런던의 서쪽에 위치한 극장과 영화관 밀집지역을 가리킨다. 웨스트 엔드의 극장은 50군데가 조금 넘는데, 일반적으로 좌석 규모 500석 이상 연중 무휴로 연극을 공연하는 극장을 웨스트엔드로 분류한다.
이곳은 아마추어 연극으로부터 각종 실험극, 정치극, 여성 연극, 장애자 연극, 어린이 연극 등이 끊임없이 무대에 오른다. 술집 2층을 무대로 꾸민 극장으로부터 창고나 빈 건물을 임대한 극장, 소방서나 낡은 교회를 개조한 극장에 이르기까지 무대 구조나 관객층 레퍼토리도 각양각색이다.
웨스트엔드는 전 세계 뮤지컬 관객을 불러 모으고 있으며, 장기공연으로 유명한 작품의 산실로도 유명한 곳이다. 1985년에 개봉한 <레미제라블>과 1986년에 막을 연 <오페라의 유령>은 지금도 상연 중이다.
한국에서 뮤지컬이 시작된 시기는 세계 최초의 현대적인 뮤지컬이 탄생한지 꼭 100년이 지난 1966년 무렵이다. 유럽에서 태동하여 미국에서 절정을 이룬 뮤지컬은 우리나라에 도입된 후 우리 문화 예술계에서는 이론적 체계 정리와 토착화 그리고 새로운 가능성에 관한 방향을 계속 모색하여 왔다. 우리나라에는 그 양식은 조금 달라도 형식적인 면에서 뮤지컬과 같은 공연물들이 올려져 왔다. 1930년대에 유행하였던 대중극의 대표적인 악극, 우리의 정서를 담은 창극과 같은 전통 음악극 형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뮤지컬은 용어 자체가 외래문화이다. 그런 점에서 국내의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의 시작인 '예그린 악단'에서 찾을 수 있다.
제3 극장의 <새우잡이>(1965) 같은 뮤지컬 형식의 작품도 있지만 예그린 악단의 <살짜기 옵서예>(1966)를 본격적인 뮤지컬의 효시로 보는 것은 현대적인 뮤지컬 양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대중적인 인기에서도 역시 서구적인 뮤지컬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국내 뮤지컬 시장을 크게 만든 작품은 1983년에 발표한 <아가씨와 건달들>이었고, 1990년대에는 외국의 뮤지컬이 직수입되어 소개되기 시작했다. 1996년에는 대형 창작 뮤지컬인 <명성왕후>가 제작되어 정기공연되고 해외에서도 공연되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뮤지컬 시장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오페라의 유령> 이후였다. 그 뒤 2000년대 이후 지금까지 뮤지컬은 가장 성공적인 공연예술 장르로 자리 잡았고 계속 성장하는 추세이다.
3. 결론
2001년 <오페라의 유령>을 시작으로 국내 뮤지컬 시장은 매년 20%이상 지속적인 성장을 이루어왔다. 2010년대엔 3,000억원 대에 진입했고, 현재는 대략 3,500억원 시장을 유지하고 있다.
우리나라 뮤지컬은 이제 비중있는 문화산업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공급 측면에서는 많은 뮤지컬 전문조직들이 설립 운영되면서 대규모 장기공연도 감당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되었고, 수요 측면에서는 고정적 애호층까지 형성되면서 관객 규모가 대폭 확대되고, 해외공연 및 수출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지금은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대중이 관심도를 잘 살리지 못하면 뮤지컬 시장 자체가 가라앉을 우려는 얼마든지 존재한다. 코로나 시대인 이때, 모든 공연예술업계가 그러하겠지만 현재 한국뮤지컬 산업은 도약과 정체의 갈림길에 서 있는 중요한 시기를 맞고 있다고 하겠다.
비대면의 시대인 요즈음 인터넷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단순하게 홍보나 마케팅을 위한 목적 등의 제한적인 운영을 넘어 3D나 동영상 제작, 다른 나라의 전문가들과의 공동제작을 위한 기반구축 등의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또한 관람객의 수준높은 가치와 요구에 부응하여, 공연예술의 전공영역 뿐만 아니라 타 분야의 예술은 물론, 다른 관련 분야의 기술들도 접목 및 확대하여 지속적인 뮤지컬의 소비를 촉진시켜야 한다.
뮤지컬이 단순히 보고 즐기는 공연예술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교육·건강·관광 등의 연계 분야와 기능의 융합을 추진하고 기업과의 제휴를 통하여 패키지화하는 등 시너지효과를 촉구하여 작품이 다양한 과정과 방법으로 소비자들에게 선택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
뉴욕과 런던을 방문하는 세계 관광객들이 찾는 필수 코스 중의 하나가 브로드웨이, 웨스트엔드에서 상연되는 뮤지컬을 관람하는 것인데, 뮤지컬이 매력적인 관광상품으로 기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드라마나 K-POP의 열풍에서 이어지는 한류의 열기를 뮤지컬 산업에 적극적으로 활용하여야 하겠다. 한국적인 창작 뮤지컬을 관광산업과 연계하여 수익을 극대화하고 문화적 교류를 활성화할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관광객이 관광안내 홈페이지를 통해 뮤지컬에 대한 정보를 접속할 수 있도록 하거나, 공항에서 뮤지컬 공연정보를 관광지도와 결합하여 제공하는 등의 노력을 통해 뮤지컬 콘텐츠를 적극 알리고, 이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또한 외국인 관람객의 경우에는 자막이나 통역 서비스를 마련하여 어려움 없이 관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하며, 이를 통해 장기적으로는 우리의 뮤지컬이 해외 진출을 하기 위한 교두보로 사용해야 할 것이다.
꿈틀거리는 한국인의 끼로서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미 드라마, 영화, 음악이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무대까지 진출하고 있는데, 그 흐름이 뮤지컬까지 이어졌으면 좋겠다. 라이센스 뮤지컬의 벽을 깨뜨리고 세계로 웅비할 창작 뮤지컬의 탄생을 기대해 본다.
<참고도서 및 사이트>
1) 공연예술의 이해와 감상, 남상식·이수완·전예완, KNOU PRESS, 2020
2) 올 어바웃 뮤지컬, 장두이·신수정, 엠에스북스, 2016
3) 뮤지컬의 사회학, 최민우, 이콘, 2014
4) 뮤지컬 감상법, 박용재, 대원사, 1998
5) https://tf.honam.ac.kr/LectureMaterials/12/read/15 (호남대학교 미디어영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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