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그릇을 만들어 주기보다 공부 그릇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 아이 영어 잘해요!!!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OECD 국가 중 거의 대한민국에만 있을 법한 이상한 현상이 있다. 아이가 5-6살 정도인데 공부(정확히 말하면 공부라기보다 암기이다. 천자문을 외운다던지, 한글을 빨리 떼고 동화책 내용을 암기한다던지 하는)를 잘하거나, 특히 영어를 잘하면 해당 아이의 엄마들은 아이를 성공적으로 잘 키웠다고 칭찬을 받는다. 그리고 아이가 계속 어느 정도 성과를 내고, 특히 영어로 된 책을 줄줄 읽고, 공인 영어 성적에서 좋은 점수를 받게 되면 이제 이 엄마를 성과를 냈으니 책을 쓸 정도가 된다. 그리고 그런 책이 잘 팔리고, 이 엄마는 좋은 부업을 하나 갖게 된다. 주민 센터나 주부 대상 강연회를 돌며 강의를 하고 강사료를 쏠쏠히 받을 수 있다.
이런 사례에서 아이가 영어를 잘한다는 기준은 무엇인가? 첫째는 발음과 유창성이다. 그리고, 자기 또래 보다 영어 단어나 표현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외국에 한 번도 안 갔다 왔거나 학원 한번 안 갔으면 완전 대박이다. 언론이나 공교육에서도 '거 보라고... 사교육 안 받았어도, 이렇게 혼자 잘 할 수 있지 않냐고..." 박수 갈채가 이어지고, 방송국에 아는 분이라도 있으면 아침 방송에도 출연할 수 있다.
하지만 소위 엄마표 영어로 아이 영어 문제를 해결(?) 했다는 가정도 지금까지 구입한 도서 및 비디오, 각종 자료 비용을 합치면 결코 적지 않은 투자 후에 결과가 나온 것 같다. 그렇다고 이런 말을 하는 의도가 엄마들의 열성과 노력을 비웃고자 하거나 평가 절하하는 것이 아니다. 도대체 그 아이가 영어를 잘 한다는 기준이 무엇이고, 아이가 영어를 잘 해서 결국 어떤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지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남들보다 빨리 한 레벨에 빨리 오르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가?
안철수 교수는 기업가 정신이라는 강연에서 우리나라의 영재의 정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
"많은 사람들이 영재, 영재 하는데, 도대체 그 영재의 기준이 무엇이죠? 우리나라에서 말하는 영재라는 아이들을 보면, 같은 또래의 아이보다, 무언가를 빨리하는 혹은 나중에 배워도 될 것은 미리 당겨서 빨리 지식을 습득한 아이를 영재하고 하는 것 같아요."
정말 그렇지 않은가? 5살 아이가 한글을 줄줄 읽으면 영재라고 한다. 초등학교 1학년인데 벌써 중학교 영어책을 줄줄 읽을 읽으면 영재라고 하고, 초등학교 6학년 아이가 토플 110점을 맞으면 영재라고 한다. 수학도 마찬가지 아닌가? 그 또래에서의 창의력 지수를 검사하는 것이 아니라. 초등학교 아이가 중학교 수학 문제를 풀면 영재가 되는 것이고, 중학교 아이가 고등학교 문제를 풀면 영재가 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나라 최고 학부의 의대에 들어가고, 서울 의대에서도 거의 탑(top) 10을 벗어나지 않았고, 서울의대 박사 뿐 아니라, 세계 3대 MBA라는 와튼 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아온 진정한 영재라고 할 수 있는 안철수 교수는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그런데, 도대체 지식을 남들 보다 좀 더 빨리 습득했다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 거죠? 요즘 지식과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인터넷을 찾아보면 되요. 병에 대해서도 사실 의사 보다, 아파본 환자가 더 많이 아는 경우도 있고요. 정말 중요한 것은 문제 해결 능력이죠. 정답이 있는 문제의 답을 빨리 찾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정답이 없어 보이는 문제의 해결 방법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한 것 아닌가요?"
안 교수님의 논리를 영어 교육에 적용해 보자. 결국 남들보다 몇 몇 단어 유창하게 발음한다고, 같은 또래의 아이보다 영어 동화책이나 소설책을 좀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더 중요한가? 영어야 본인이 필요가 있을 때 목적을 분명히 하여 필요한 만큼만 배우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영어 공부를 어려서부터 혹은 결정적인 시기에 안 해서 영어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경우 공부를 할 수 있는 기본 역량이 쌓이지 않아서 영어 공부도 안 되는 것이다.
Tips. 영어를 못하는 이유는 영어를 적기에 배우지 않아서가 아니라, 80-90%는 공부할 수 있는 그릇이 만들어지지 않아서이다. |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트린 엄마들
하지만 선행 학습을 통해 혹은 어떤 형태의 영재 교육을 통해 아이들의 능력을 너무 일찍 끌어 낸 엄마들에게 충격적인 심리 보고가 있다. 오히려 조기에 성과를 낸 아이들이 대학입시 전후나 사회생활에서 별 다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거나 평범한 사람에도 못 미치는 성과를 낸다는 것이다.
EBS 다큐 <<칭찬의 역효과>>라는 프로그램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영재라고 선발된 아이들의 추적 조사 결과가 소개 된다. 5-7살 사이 영재 소리를 듣던 아이들 가운데 명문대에 진학 하는 아이들은 10% 내외이고, 반은 평범, 반은 평범 이하의 성과를 낸 것으로 보고된다.
이러한 결과는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에도 잘 소개 되어 있다. 미국의 루이스 터먼 박사 연구팀이 미국의 IQ 140-200 이상의 영재 학생들 1400명에 대한 30-40년간의 추적 조사를 했다. IQ 가 좋은 아이들이 사회에 큰 업적을 내리라는 기대와는 달리, 이 아이들은 자라면서 대다수가 평범 혹은 그 이하의 삶을 사는 것으로 보고 되었다. 그러면서 터먼 박사가 내리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어려서 똑똑한게, 사회에서 성공하는 것과 상관 관계를 희박하다고...
그런데, 미국과는 달리 한국에서는 아이들이 평범해 지는 것을 넘어서 이상해 질 수도 있다. IQ 라는 것이 무엇인가? 결국 암기력과 계산능력이다. 어려서 같은 또래보다 암기력과 계산능력을 잘한다고 “영재” 혹은 “천재”라는 무거운 짐을 지고 살다 보니, 아이들은 항상 어른들이나 주변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를 받게 되고, 이후 오히려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공부 그릇이 되어 있으면 영어도 충분히 잘할 수 있다.
“대한민국 영어는 다 틀렸고, 내가 해 본 경험이 제일 옳으니 이제부터 내 방식대로 영어를 해봐라” 는 식의 책이 시중에 많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책은 정찬용의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 마라>> 류이고, 최근에 3만부 이상 팔린 책 중에 곽세운씨의 <<큰소리 영어 학습법>>이라는 책이 있다. 물론 영어를 정복할 수 있는 다양한 경험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런 책들의 공헌도 인정하지만, 자신의 방법을 성급하게 일반화 하시려는 이런 "경험론자"들의 과도하고 근거 없는 주장에 말문이 막힌 적이 많다.
곽세운 씨는 이렇게 주장한다.
"외고에서 진학한 학생 말고, 서울대 생 중 해리포터나 찰리와 초코렛 공장 등의 원서 소설을 읽을 수 있는 학생은 20% 미만일 것이고, 그렇기에 우리나라 영어 교육은 실패작이다"
참 요즘 말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주장이다.
우선 과연 저자는 서울대에 가서 외고 출신 최소한 10명에게 해리포터 책을 디밀고, 읽어 보라고 했는지가 의심스럽고, 설사 서울대생이 해리포터를 읽지 못한다고 해서 그게 뭐가 큰 문제인가? 그럼 서울대 입시 시험을 해리포터 읽기 시험으로 내야 한다는 것인가? 해리포터를 읽은 아이들이 과연 서울대에 가서 법과 경제를 공부하고, 의학과 화학을 공부해서 지금처럼 해외 저널에 실리고, 우리나라 경제와 사회를 유지 발전시킬 만한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나는 지금보다 영어 공부 환경이 열악한 90년대 초에 대학을 다녔는데, 그때 나보다 영어 회화를 못했던 나의 동기들과 후배들은 지금 대부분 미국에 가서 학위를 하고, 취업을 해서 미국에서 거주하고 있다. 영어로 된 저널은 읽지만, 떠듬떠듬 영어를 말하던 친구는 미국 일리노이 공대에서 박사를 따고, 실리콘 벨리에서 취직했고, 정말 영어 공부 한 한다 싶었던 교육학과 친구도 캔자스에서 박사를 따고 볼티모어 평가 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연구소에서 7년 동안 갇히다 시피 연구만하고 올해 유전 공학 박사 학위를 딴 내 동생도,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영어회화를 공부해서 내 후년에는 미국에서 박사후 과정을 할 준비를 하고 있다.
영어그릇 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 그릇이다
결론적으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영어그릇 보다 중요한 것은 공부 그릇이다. 아래의 상관관계를 보자.
① 국어, 수학을 잘한다. -----> 영어를 잘한다.
② 영어를 잘한다. ------> 국어, 수학을 잘한다.
내가 10년동안 대학생 편입생과, 고 3학생들을 지도하고 성적을 분석해 본 결과
①의 경우가 80-90%의 비율인 것 같다. 영어 성적(단순히 수능 성적이 아니라 토플, 편입영어 수준)이 좋은 아이들은 국어나, 수학 성적도 어느 정도 괜찮다. 즉, 어느 정도 다른 과목을 공부할 수 있는 “공부 역량”이 되어 있으면 영어도 잘 할 확률이 높다. 물론 10-20%의 예외가 존재한다. 하지만 국어, 수학은 최고 성적인데, 영어는 바닥을 치는 경우는 거의 없다.
②의 경우는 대략 50-60% 의 가능성이 있다. 영어를 잘한다고 반드시 국어, 수학을 잘하는 것은 아닌 아이들이 많다. 내가 지도한 고 3학생들은 외국에서 5-6년 국제학교를 다니다가, 귀국해서 특례 입시하는 별도 시험을 치르고 대학에 가는 아이들이다. 국제학교에 다닌 경험이 있는 아이들은 대부분 영어 회화는 수준이상 한다. 하지만 시험 영어 성적은 별개인 경우도 많다. 그리고, 영어는 성적은 좋은데 국어, 수학 성적은 형편없는 경우도 ①의 경우에 비해 훨씬 많다.
이는 영어 교육계에서도 이전부터 보고되던 사실이다. 커민스(Cummins) 라는 학자는 영어 실력에도 두 가지가 있다고 한다. 즉, 기본적인 의사소통 능력(BICS)와 학문적 영어 구사 능력 (CALP)이다. 말은 유창하게 하면서, 고난도의 지문을 읽고, 쓰거나 할 수 없는 사람이 많다는 설명이다. 우리말도 그렇지 않은가? 성적은 좋지 않은데, 말발이 엄청난 아이들이 있다. 영어도 필리핀이나 남미권의 사람들은 외국인들을 만나 길을 가르쳐주고, 택시 운전기사를 할 정도의 영어 실력은 되지만, 논문을 읽고, 분석하고, 에세이는 쓸 정도의 실력이 안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시 작은 결론을 내려 보자. “나는 기본적으로 조기 영어 교육을 반대한다. 남들보다 좀 더 일찍 영어를 배우고, 단어를 외우고, 발음을 유창하게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기를 절제할 수 있는 능력과 국어를 필요한 다른 지식을 습득할 수 있는 ”공부 그릇“을 만드는 것이다. 조기 교육보다 중요한 것은 적기 교육이다. 수많은 교육학자가 이야기 하는 이 기본적인 사실이 왜 수용이 되지 않는 것일까? 3-5세 동안에는 놀이 교육과 인성교육이 중요하다. 6-12세 동안에는 뇌를 자극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과 몰입 독서를 통한 언어 능력 개발이 중요하다. 구지 영어를 넣고 싶다면 초등학교 이후에 넣어도 늦지 않다.”
참고문헌
안철수, 기업가 정신, 강연 CD
H.D. Brown, Principles of Language Learning and Teaching
곽세운, 큰소리 영어 학습법
정찬용, 신 영어 공부 절대로 하지마라, 토스북
EBS 다큐프라임, <<칭찬의 역효과>>
글쓴이 심정섭은 텐인텐 전문가 칼럼에서 사교육비 경감에 관한 글을 쓰고 있습니다.
전문가 칼럼으로 가기전에 맞게방 엄마 아빠들의 의견을 듣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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