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우리 가족은 네덜란드 상주연구원으로 발령난 남편과 함께 독일 국경에 인접한 네덜란드 베네콤이란 동네에 정착했다. 한국교회를 찾지 못한 우리는 베네콤에 있는 네덜란드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곳에서 Tim Vos 할아버지를 만났다. 우리가 한국 사람이라고 하니까 ‘I am a Korean’이라고 하시면서 한국전쟁에 참전했다는 말씀과 함께 우리를 당신 집에 초대해 주셨다.
7월에 할아버지 댁을 처음 방문하였는데, 당신의 한국전 참전 이야기를 오랫동안 우리에게 들려주셨다. 한국전 당시의 지도, 전쟁사진, 흑색군복, 관련 책자와 엽서 등등...
집에 돌아온 나는 한달에 한번쯤은 들려서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시간을 갖자는 다짐을 했었는데, 할아버지 생각은 다른 듯 했다. 수시로 전화하시고 우리 집을 방문하셨다. 그래서 네덜란드어를 배운다는 핑계(?)로 일주일에 한번 시간을 내어서 할아버지 댁으로 방문을 하기로 약속을 하고, 한국에 돌아오는 날까지 그 약속은 계속 이어져 나갔다. 우리는 Tim Vos 할아버지 내외를 가족과 같이 생각했고, 그분들도 우리들을 자식과 손주로 생각하셨다.
한국전에 두 번이나 참석하셨던 할아버지는 이제 남은 기억이 한국밖에 없는 듯하다. 뉴스에 한국이야기가 나오면 관련기사(북한포함)는 모두 스크랩을 해 두셨다. 삼성, LG, 현대 등 네덜란드에 진출한 한국 기업 이야기가 나오면 ‘넘버원 코리아’를 외치신다. 60여년전 당신이 목숨을 걸고 지켜낸 대한민국이 그 숱한 어려움을 이겨내고 세계의 으뜸가는 모범국가로 성장했으니 얼마나 감개무량할까? 대한민국에 관련된 것은 모두 좋게 보시는, 거의 맹목적인 할아버지이시다.
한국전쟁 60주년에 맞추어 네덜란드 현지에서 참전용사들을 위로하고 고마움을 전하는 행사가 2010년 6월에 참전부대(Arnhem에 있는 ‘판 하우츠’연대)에서 있었다. 우리 가족은 할아버지가 부대에 연락해서 초청장을 받아주셨는데, 나보고는 꼭 한복을 입고 오라고 하셔서 말씀대로 한복을 입고 참석하였는데, 참석한 네덜란드분들이 너무 좋아하셨다. 내가 입은 옷을 보고 정확한 발음으로 ‘한복’이라고 얘기도 하고, 같이 사진도 찍자고 하셨다. 베네콤에서 왔다고 하니까 'Oh! Vos family'라고 하면서 알아준다. 할아버지께서 얼마나 우리가족 얘기를 하셨는지?
한국으로 돌아올 날이 가까워지자 할아버지 내외와 나는 주로 가까운 곳에 여행을 다녔다. 네덜란드를 많이 알려주시려고 했던 것 같다.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 네덜란드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곳에 데리고 다녔고, 당신이 돌아가시면 묻힐 곳도 알려주셨다. 그리고 나에게 당신이 여태껏 모아두셨던 한국관련 스크랩북도 주시고 한글과 영문으로 작성되어 있는 1952년에 발행된 한국전참전증명서(‘6.25사변종군기장수여증’이라고 표기되어 있다)도 주셨는데, 그 증명서가 내가 삶 속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유물>이다. 기회가 된다면 나 혼자만 간직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전쟁박물관에 기증하고 싶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지난 10년 동안 한 달에 한 두번은 통화를 했고, 두 분 생신 때마다 작지만 선물을 보내드렸다. 두 분도 우리 가족 생일을 기억하고 카드와 선물을 보내주셨다. 제작년(2020년) 할머니 생신(3월 27일)때 선물을 보내고 전화를 드렸는데, 계속 연락이 안되더니, 4월 5일 어렵게 할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할아버지께서 건강이 좋지 않다는 말씀이 있었다. 그리고 4월 8일에 어제(4월 7일) 돌아가셨다는 메일을 받았다. 가족 모두 황망한 충격. 늘 걱정하고 있었지만 막상 소식을 듣고는 말을 잃었다.
장례식은 4월 10일에 교회에서 소수의 친척과 지인이 모여 진행하고 인터넷으로 중계한다는 연락이 왔다. 코로나가 아니었으면 장례식에 직접 참석했을텐데, 우리 가족 4명은 각자의 장소에서 별도로 인터넷 장례식에 참석했다. 네덜란드어로 진행되어 정확한 내용은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할아버지께서 늘 창가에 태극기를 두고, 한국가족을 사랑하셨다는 말씀과 함께 남북한의 평화도 기원해 주셨다.
우리가 한국으로 돌아올 때 할아버지께서는 횡성에 있는 네덜란드 참전기념비에 당신을 대신하여 헌화를 해 달라고 부탁하셨고, 지금까지 매해 현충일마다 우리는 그곳에 헌화를 하고 있다. 그동안은 할아버지 이름으로 헌화를 하고, 참배현장을 사진으로 담아 보내드리곤 하였는데,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할아버지가 하늘나라에 가셔서 옛 전우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계실테니까.....
작년(2021년) 현충일부터는 할아버지 이름이 아닌, 우리 이름으로 헌화를 하고 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지만, 할아버지와 한 약속은 계속 지켜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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