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동쪽 지역을 동유럽이라 말할 수 있지만, 지리적 위치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고 과거 사회주의 체제의 경험을 가진 유럽 동부지역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흔히 쓰인다.
1917년 러시아에서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 정권이 수립되었지만, 동유럽 나라들의 사회주의 경험은 러시아와는 다른 경로를 거쳤다. 1945년 2월 소비에트 연방과 미국, 영국이 가진 얄타회담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동유럽에 대한 지배권을 인정받는다. 동유럽 사회주의 진영 내에서 소비에트 연방은 영향력이 강해서, 1950년대와 1960년대, 헝가리와 체코슬로바키아가 독자 노선을 표방하자 무력으로 이를 진압하기도 했고, 1980년대 폴란드에서 연대 노조 운동이 왕성해지자 이에 대한 직·간접적 개입에 나서기도 했다. 또 발트 3국을 강제로 합병해서 이들 나라는 1990년에야 독립을 선언할 수 있었다.
1989년 드디어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가 시작되었다. 어떤 국가들은 시민과 정권 사이의 타협을 통해, 일부는 집권자들의 자발적 개혁으로, 또 일부는 아래로부터의 급진적 개혁으로 사회주의 체제를 무너뜨렸다.
기독교 정교와 가장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는 가부장적 질서 아래 여성들은 남편과 신에게 순종하고 아이를 키우며 가정 살림을 꾸리는 것이 이 지역의 대체적인 풍습이었으나, 사회주의 체제가 들어서면서 이 여성관에 급격한 변화가 초래된다. 사회주의 체계는 여성에게 남성과 동등한 정치적, 법적, 시민적 권리를 보장하여 남성과 함께 산업현장에서 일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사회주의 체제 수립 초기의 열정이 차츰 식으면서 여성해방보다는 이혼율의 증가에 대한 대비, 출산율의 저하 방지나 가정과 국가의 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면서 전통적인 여성관을 근대적으로 변형해 여성의 사회 활동에도 관습적, 제도적으로 일정한 제한을 가하게 되었다.
사회주의 시절에는 어느 정도의 생활 수준을 국가가 보장했고, 취업의 걱정이 없는데다 애 낳기를 권했기 때문에 남녀 모두 20대 초반의 나이에 결혼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한 부부는 대체로 독립된 단위를 구성하며 시부모를 모시지 않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지만, 사회주의 시대 이래 심각한 주택 부족으로 부모를 봉양하는 것과 상관없이 함께 사는 경우가 많았으며, 심지어는 이혼 후에도 나갈 주택을 구하지 못해 함께 거주하기도 했다.
오늘날 동유럽은 이전 시대에 비해 남녀 모두 결혼하는 나이가 차츰 늦어지는 추세이다. 예전처럼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에 결혼해야 한다는 인식은 많이 희박해졌고, 취업이 어려워지면서 경제적 안정을 이룬 후에 결혼해야 한다는 인식이 강해졌다.
사회주의 정권이 종교에 적대적인 입장을 취해 왔어도, 동유럽인들은 종교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경우가 많았다. 폴란드의 경우 사회주의 시절에도 인구의 80%는 카톨릭 신자였으며, 심지어는 공산당원의 상당수가 카톨릭을 믿기도 했다.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진 이후 카톨릭 교회는 종교교육을 학교에서 의무화해야 한다는 법안을 지지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폴란드인의 종교적 열기가 사회주의 시절보다 다소 가라앉았다. 그렇지만 폴란드인의 일상생활에서는 세례, 정기적인 예배 참석, 결혼식 등에서 카톨릭의 영향력은 여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사회주의는 공식적으로 민족 차별을 폐지했고, 모든 민족에게 자결권을 부여했으며, 궁극적으로는 민족 사이의 경계가 소명된 사회를 지향했다. 국제정치에서 소비에트 정권은 자본주의의 위협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 내며 유럽의 사회주의 운동을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동유럽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고자 했다. 하지만 동유럽의 많은 민족은 혁명 전부터 러시아를 싫어했고, 그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국가를 수립해 자신들의 문화를 누리고자 했다.
이 지역의 민족 문제는 사회주의 시절 억압적인 권력과 공식적인 민족차별배제 정책 아래에서 봉합되어 오다가 사회주의 체제가 무너짐에 따라 폭발하게 된다. 동유럽 민족 문제가 쉽게 매듭이 지어지지 않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같은 영토 내에 여러 민족이 함께 생활하는 현상이 사회주의 시대에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체제에서 직장은 노동을 하고 월급을 받는 곳을 뛰어넘어 여가와 취미 생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공간이며, 국가에서 보장하는 사회복지가 국민에게 전달하는 통로 역할을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경제 체제와 개인주의 가치관이 밀려오면서, 특히 젊은 세대에게 직장의 의미는 크게 변화하였고 직장 밖에서 개인의 여가를 누리려는 경향도 강해지고 있다.
러시아에서 시작한 다차문화는 동유럽의 여가 생활에서 중요한 요소를 차지하고 있다. 일종의 주말농장이자 별장인 다차는 복잡한 도시 생활에서 벗어나 자연환경과 함께하는 공간이다. 우리에 비해 긴 시간이 보장되는 휴가기간 동안 많은 동유럽인들은 한때 장거리 여행을 즐기기도 했다. 국가에서 보조금을 지급해 줄 뿐 아니라 교통비 및 경비가 매우 저렴했고, 은퇴 후의 국가사회보장제도가 좋아 저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여행을 즐겨했다. 이 밖에 산책을 하거나 스포츠를 즐기기도 한다. 독서도 여가를 의미있게 보내는 방법으로 빼놓을 수 없지만, 차츰 인터넷이 그 자리를 차지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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