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312

패턴7) That's because~

That's because~는 That에 대한 구체적인 이유를 말하는 것으로 '그것은 ~때문이다'라는 의미 앞의 문장들과 마찬가지로 because다음에 절이 온다 1. That's because they are geniuses. 그것은 그들이 천재이기 때문이다 2. That's because we didn't know the details. 그것은 우리가 상세한 내용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3. That's because you are young. 그것은 네가 젊기 때문이다 4. That's because I didn't study. 그것은 내가 공부를 안했기 때문이다 5. That's because you smoke. 그것은 네가 담배를 피기 때문이다

패턴6) This(That) is why~

This(That) is why~는 '이것이(그것이) 바로 ~한 이유이다'라는 의미로 Why 다음에 절이 와야 한다 우리말에서는 '이래서(그래서) ~하다'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This is why I like him. 이래서 내가 그를 좋아합니다 This is why I am looking for a job. 이래서 내가 직업을 찾고 있습니다 This is why I called you 이래서 내가 너에게 전화를 했다 This is why we need a 'fixed price' 이래서 정찰제가 필요한 것이다 That is why I went home 그래서 내가 집에 간 것이다 That is why I majored in history in college 그래서 내가 대학에서 역사를 전..

한국전쟁이 남북한 국내정치에 미친 영향

남과 북에서 서로 다른 이념과 체계를 가진 두 개의 정부가 수립되면서 한반도 내의 긴장이 고조되었다. 1949년 북한의 전쟁 계획을 반대했던 스탈린은 1950년 김일성의 전쟁 계획을 승인하였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발발하였다. 전쟁초기 북한은 남한의 대부분을 점령했으나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유엔군과 한국군은 38선을 넘어 북진을 시작하였다. 10월 중순 중국의 참전으로 후퇴했다가 38선 부근에서 고착된 채 전쟁은 계속되었다. 전선이 고착되자 1951년 7월 유엔군과 공산군은 정전 협상을 시작하여 2년 후 1953년 7월 27일에 정전협정을 체결하였다. 한국전쟁의 결과 남북한에는 총 520만명의 사상자가 발생하였는데, 이같은 인적손실 피해는 당시 남북한 인구를 ..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과 관련해서, 3상회의 내용과 그 의미 그리고 좌우익의 반응, 대응의 결과와 영향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패망으로 한국은 식민지에서 해방되었으나 즉시 독립 국가를 수립할 수 없었다. 미국 정부는 일반명령 1호를 통해 북위 38도선을 중심으로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에서 일본군의 항복을 받고 분할 점령하도록 하였다. 미국과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령 지역과 독일에 협력했던 국가들을 처리하는 원칙을 만들기 위해 모스크바에서 외상회의를 가질 때 한국 문제를 의제에 포함 시켰는데, 이 회의에서 미국과 소련이 합의한 것이 곧 ‘조선 문제에 대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이었다. 조선에 관한 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서는 크게 4가지 내용으로 구성되었는데,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선을 독립 국가로 재건설하며, 조선을 민주주의 원칙하에 발전시키는 조건을 조성하고, 가급적 속히 장구한 ..

섬을 '셤 '또는 '염'으로 부르던 시대가 있었다

'섬'이라는 말이 옛날에는 '셤'이라고 쓰인 적도 있고, 또 '염'이라고 쓰인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한양대 김정수교수님이 오래전에 한글 학회의 땅이름 사전에서 정리한 자료를 보내 주셨는데, "염"이 "섬"과 똑 같은 뜻으로 쓰인 예가 아주 많고, 드물게 "여"(암초)의 뜻으로도 쓰여 있는데, 그 어원은 동일한 것이라고 합니다. “섬”을 뜻하는 “염”의 보기들: 구볌(구비염) [섬] 경기-김포-양촌-학운- 사들구지 남쪽 개펄에 있는 섬. 구비염 [섬] 경기-김포-양촌-학운- =>구볌. 돌염(도서) [섬] 경기-김포-대곶-약암- 약산 서남쪽에 있는 섬. 돌이 많음. 마얌(마염, 매염, 응도) [섬] 인천-중-중산- 월촌 북쪽 약 4㎞ 거리에 있는 섬. 넓이 17.4㏊. 매가 새끼치고 살았음. 섬 안에는 4㏊..

패턴5) This(That ) is what ~

This(That ) is가 what + 절과 연결하면 '이것(그것)이 바로~이다' 라는 의미로 해석되는데, 상대방이 말한 내용을 이어받아 what절 이후를 구체적으로 설명할 때 사용되는 표현 1. This is what I was looking for 이것이 바로 내가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2. This is what I wanted to buy 이것이 바로 내가 사고 싶었던 거예요 3. This is what you have to do now 이것이 지금 당신이 해야 할 일 입니다 4. That's what I want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것입니다. 5. That's what she bought a bag 그것이 바로 그녀가 산 백입니다 6. That's what I do not like 그것..

패턴4) I'm looking for~

I'm looking for~는 '을 찾고있는 중이다'는 의미로 필요한 물건이나, 잊어버린 물건 등을 찾고 있을 때 사용할 수 있는 표현이다. look for도 '찾다'이고, find도 '찾다'라는 뜻인데, find와 look for를 구별해보면 find는 '어떤대상을 발견했다'는 의미를 갖고, look for는 찾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의 의미가 있다. 즉, look for(찾는 과정)를 했기에 find(찾은 결과)가 있는 것이다. 1. I'm looking for a bus stop 나는 버스정류장을 찾고 있습니다 2. I'm looking for a lost mobile phone 나는 분실된 핸드폰을 찾고 있습니다 3. I'm looking for a job 나는 일자리를 찾고 있습니다(일자리를..

패턴3) I am trying to~

I am trying to~ 는 '~을 해보려고 하는 중이다'는 뜻이다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애쓰고 있다 등 무엇을 하려고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할 때 사용한다. I am trying to + 동사의 형태로 말하면 된다. I am trying to have lunch 점심먹으려고 하는 중이에요 I am trying to call you 당신에게 전화하려던 중이에요 I am trying to forget him 그를 잊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I am trying to speak English well 영어를 잘 하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I am trying to be happy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I am trying to paint my house 우리집에 페인트칠하려는 중입니다

내가 조선시대의 양반이었다면 이렇게 살았을 것이다....

남양의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나는 부친과 숙부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어려움 없는 어린시절을 보냈다. 여섯 살 즈음 들어 천자문을 통해 글자를 익히고, 소학, 효경 등 사서삼경을 익히기 시작하였고, 문장 짓는 법을 학습하였다. 열 다섯 살 무렵 집을 떠나 친구들과 함께 절에 들어가 경서를 읽고 문장 가다듬기를 집중적으로 연마하였다. 과거준비를 위해 향리에서 운영하는 거접들의 무리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과거 입시를 위해 경서, 성리서, 역사서 등을 탐독하여 소양을 넓혀 키우고, 과문작성을 집중하였다. 일반적인 교양의 습득과 학문연구도 중요하지만 과거공부에서는 시험의 경향에 맞추어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맞춤 공부를 하였던 것이다. 조선시대 양반은 누구나 문과급제를 꿈꾸지만, 급제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

조선시대로 돌아가서 '등장을 올리는 대표자'가 되어 직접 '민장'을 올려보고 그에 대한 관의 대응과 결과를 예측

1) 민장작성 남양부에 사는 최효순인데, 저희 형제를 대표하여 삼가 이렇게 소를 올립니다. 우리는 조상 대대로 남양 서면 송림골에서 살아온 집안이고, 저는 송림골에서 서당을 설립하여 학동들을 가르치고 있는 훈장입니다. 우리는 남양부 서면 무봉산 남사곡을 무주지라 알고 있었기에 30년 전 조상의 분묘를 조성하였는데, 수년 전부터 분묘지에 알 수 없는 불이 나고 봉분의 풀들이 수시로 고사하는가 하면 짐승 등의 분묘 훼손으로 보이는 사건이 반복 발생하였기에 형제들이 숙의하여 약 120보 우측으로 옮겨 이장해서 무탈하게 지내오고 있었는데, 지난해 들어 조상님들의 분묘지를 포함한 해당 산지를 본래의 산주 홍성원에게서 송근술이 매수하여 자신의 부모 묘를 조성했다고 하면서, 우리의 무덤을 파서 옮기라고 합니다. 하여..